HOOC
제프 베조스의 ‘오스카 꿈’이 이뤄졌다
2017.02.28.
[SUPERICH=이세진 기자] “제프, 당신이 오늘 상을 받는다면 오스카 트로피가 영업일 기준 2일에서 5일 사이에 배달될 겁니다. 그러브헙이 배송을 가로챌 수도 있고요.”

2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자 지미 키멜(Jimmy Kimmel)의 농담에 카메라가 방청석에 앉아 있는 ‘테크 거물’ 제프 베조스(Jeff Bezosㆍ53) 아마존 CEO를 비췄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의 배송 시스템을 빗대고 경쟁자인 그러브헙(Grubhubㆍ음식배달업체)을 언급한 농담에 제프 베조스는 기대 섞인 웃음을 지었죠. 그가 영화 시상식에는 왜 참석했을까요? 그가 외계인 분장을 하고 까메오로 출연했던 영화 ‘스타트렉:비욘드’ 때문은 아닙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중계 화면에 잡힌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출처=ABC라이브스트림]


아마존은 올해 영화 ‘투자ㆍ배급사’로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됐습니다. 아마존은 2011년 스트리밍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2012년 독자 콘텐츠를 제작하는 ‘아마존 스튜디오’를 출범한 ‘콘텐츠 회사’입니다. 넷플릭스(Netflix)와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죠.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많은 상을 가져갔지만 올해 오스카의 진정한 승자로 아마존이 꼽히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영화 회사’들의 잔치에서 신생 스트리밍업체가 3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았기 때문인데요. 

지난 2015년 말 “나는 아마존이 오스카에서 수상하기를 원한다(I want Amazon to win an Oscar)”라고 포부를 밝혔던 제프 베조스의 꿈이 만 1년여 만에 이뤄졌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아마존이 투자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2017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케네스 로너건)과 남우주연상(케이시 애플렉)을 받았습니다. 후보로 지명됐던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서 2개 부문에 이름이 불린 것이죠. 

아마존의 또 다른 영화 ‘세일즈맨’도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마존의 경쟁자, 넷플릭스의 영화 ‘더 화이트 헬멧’은 단편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 후보작을 내고 수상한 것은 올해가 최초입니다. 숫자상으로는 아마존이 조금 앞서 나갔습니다.

아마존은 영화업계에 발을 내딘 2012년 이후 빠르게 주류 영화계로 진입했습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아마존이 북미 판권을 가진 영화 5편이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개막작이었던 우디 앨런 감독의 ‘카페 소사이어티’,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외에도 ‘네온 데몬’, ‘패터슨’, ‘김미 데인저’ 등이 아마존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 초청은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 외에도 상업적인 성공으로 도약할 기회기도 하죠. 전 세계 영화인들이 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칸 필름마켓’을 찾아 판권을 사고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5월 열린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의 우디 앨런 감독(가운데) [출처=게티이미지]


우디 앨런과 같은 거물 영화인들이 아마존과 손을 잡은 데는 특별한 전략이 힘을 발휘했습니다. 오리지널 드라마와 영화 공개를 인터넷 플랫폼에서 먼저 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아마존은 기존 영화 유통 단계를 그대로 가져가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스트리밍으로 가기 전 극장에서 먼저 트는 것이죠. 이는 감독들이나 제작사가 고수하던 방법을 거스르지 않는, 이질감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멘체스터 바이 더 씨’도 지난해 12월 개봉했습니다. 미국 영화정보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6146만달러(697억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이같은 사례들로 아마존은 기존 영화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이미지에, 독립ㆍ예술영화에 투자한다는 좋은 평판을 얻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세계 최초 공개된 장소도 독립영화제의 대명사인 선댄스영화제였죠. 

일각에서는 아마존의 예술영화 분야 침투가 독과점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고 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아마존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설명하는 제프 베조스 CEO[출처=게티이미지]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FT)는 라이벌 영화제작사 임원의 말을 인용해 “최근 독립영화들의 가격이 치솟고 있다”라며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가격을 엄청나게 올려놓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죠. 독립영화가 제값을 받는 것도 정당한 일이지만, 이 또한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또 다른 권력’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이번 수상은 한국 영화계에도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올해 개봉이 예정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도 넷플릭스 제작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600억 원이 넘는 대작인데다, 할리우드 인기 배우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릴리 콜린스 등이 출연하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죠. 아마존과 넷플릭스 레이블이 붙은 영화들이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카데미에서도 ‘한 건’씩 하자 덩달아 기대가 높아지는 분위기입니다. 


‘옥자’ 촬영현장 [제공=넷플릭스]


‘옥자’의 개봉 형태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극장개봉 뒤 스트리밍 플랫폼에 들어갈지, 혹은 바로 인터넷상에 공개될지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 작품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관심이 워낙 높은 터라 “유료 회원을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넷플릭스에서 독점 개봉할 것”이라는 전망과 “한국 관객 정서상 극장 개봉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