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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국내] ‘슈퍼’ 상속자들, 그 왕관의 무게는…
삼성家 에버랜드 상장 계획으로 수면위로 오른 그룹 승계…천문학적 금액의 상속세, 세금? 신탁? 기부? 그들의 고민
[특별취재팀, 염유섭ㆍ양영경 인턴기자]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달 넘게 병석을 지키면서 세간의 관심이 자연스레 ‘포스트 이건희’ 체제로 쏠리고 있다.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계획까지 발표되면서 사실상 삼성가의 3세 승계 작업이 시작된 상황. ‘슈퍼 상속’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점쳐지면서, 이전 상속자들의 전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왕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상속자들이 치른 대가=‘슈퍼 상속’이란 이슈의 한복판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간의 예상대로 상속을 완료하면 단숨에 국내 3위 부자로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보유 주식에 비상장사가 많아, 상장사 기준 주식가치 산정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에 밀렸었다. 그러나 삼성SDS와 에버랜드가 계획대로 다음해 상반기 상장을 마치면 이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3조원이 넘게 된다. 여기에 기존 삼성전자 지분 가치까지 더하면 이 부회장은 4조원대 주식 부자가 된다.

상장에 이어 상속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이건희 회장의 주식 가치는 11조6000억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최고 상속세율 50%를 적용한 상속세는 5조8000억원 상당. 상속세를 제하고도 5조8000억원 상당의 상속분이 유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한 ‘실탄’ 마련과 삼성가 3세들의 지분 방정식을 정리하기 위한 계획이라는 분석이 파다한 가운데, 세간의 예상대로 상속이 이뤄지면 국내 최대 규모의 상속세 기록은 단숨에 깨지게 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상속세 납부는 2004년 고(故)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유족들이 낸 1355억원이었다. 당시 고인은 주식 1297만5952주(평가총액 937억원) 등 3339억원 상당의 상속분을 남겼다.

역대 2위 상속세 납부액은 2003년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부과된 세금이었다. 당시 유족들에게 돌아간 상속분은 주식평가액 2900억원과 100억원대의 예금 등 총 3000억원 상당이었고, 신창재 회장 등 유족들은 1338억원의 상속세를 냈다.

이 외에도 고(故) 이임룡 태광산업 회장의 유족들이 낸 1060억원의 상속세 등이 세간을 놀라게 한 규모로 평가된다.


▶회사 매각부터 탈세까지…상속이 낳은 아이러니=현행 상속세율은 규모에 따라 10~50%까지 차등 적용된다. 상속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는 경우나 각종 탈루 수법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종자산업을 이끌어온 중견 기업인 농우바이오의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8월 창업주인 고희선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 유족들은 1200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납부할 방안을 찾지 못해 결국 주식 매각에 나섰다. 농협이 농우바이오를 인수하면서 종자주권을 외국기업에 뺐기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외환위기까지 견뎌냈던 중견기업이 상속세에 발이 묶여 매각돼야 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3대를 이어온 대한전선도 상속 이후 고충을 겪었다. 대한전선은 1955년 고(故) 설경동 회장이 창업한 이후 50여년 동안 무적자 실적을 내며 국내 최초의 전선 제조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창업주의 아들인 설원량 회장이 2004년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이후 경영 실적 악화 등 악재가 잇따랐다. 오너가 3세인 설윤석 전 사장은 결국 지난해 58년 동안 가문이 지켜온 경영권을 포기했다.

상속세 납부를 유족들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존하다 보니, 과세당국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들어 상속세를 탈루하는 일도 빈번하다. 2008년에는 고(故) 이임룡 태광산업 전 회장의 상속분 중 태광산업 차명주식 18%가 누락돼, 800억원 가량의 세금이 추징되기도 했다.

최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도 회사 주식 19만8000주를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상속세 41억2000여만원 등 총73억7000여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기소됐다. 홍 회장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 탈루 세액을 뒤늦게 납부했다.


▶신탁 혹은 기부…외국도 ‘상속은 골머리’=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캐나다 등 상속세가 폐지된 국가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연방 세율과 주마다 적용되는 세율을 정해놓고 있다. 연방 상속세율은 최고 40%, 주별 상속세는 워싱턴주가 20%로 가장 높다.

외국의 슈퍼리치들에게도 상속액의 절반을 넘나드는 세율은 부담일 터. 이들은 신탁과 기부 등 상속 부담을 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외 슈퍼리치들이 주로 활용하는 상속 방법은 ‘신탁’이다. 신탁은 슈퍼리치들이 출연한 자산을 자선단체 등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자를 불린다. 신탁 설립자가 매년 출연하는 자산과 신탁에서 자선활동에 쓰이는 금액이 항상 같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이자 등으로 불린 잔액은 상속자에게 세금없이 전달할 수 있다. 신탁으로 넘어간 자산은 더 이상 설립자의 것이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 중 20위 안에 드는 슈퍼리치를 4명이나 탄생시킨 월마트가 신탁을 상속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다. 월마트 창업주인 샘 월튼은 2012년 1500억달러 상당의 자산을 21개의 신탁을 통해 자녀들에게 증여세 없이 전달했다. 월튼은 21개의 신탁 중 ‘재키 오 신탁’에 209억달러를 넣는 등 신탁에 많은 금액을 넣었고, 2012년에만 월튼의 신탁들이 90억달러를 자선활동에 쓰는 등 많은 활약을 했다. 이자 등으로 불어난 금액은 세금 없이 자녀들에게 돌아가 짐 월튼, 롭슨 월튼 등 4명의 슈퍼리치를 낳았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제왕’ 쉘든 아델만도 자사주를 30개가 넘는 신탁에 배분, 365억달러로 추정되는 자산 중 79억달러를 가족들에게 증여했다. 그가 2010년부터 신탁을 통해 ‘절세’한 증여세액은 28억달러 상당으로 평가된다.

슈퍼리치들의 통큰 기부도 실상은 어차피 내야할 돈을 ‘기부 천사’라는 명성으로 보상받겠다는 계산의 일환이란 지적도 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등은 자녀들에 대한 상속 대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기빙 플레지(기부 서약)’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기부 서약은 국내의 척박한 기부 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로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당시 미 과세당국은 2011년부터 100만달러를 넘는 상속분에 대해 최대 55%의 상속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안을 밝힌 바 있어, 이들의 기부 서약이 결국 세금으로 나갈 돈을 기부로 대신하겠다는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영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국 정부는 2011년 유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를 10% 깎아준다는 ‘레거시 10’ 제도를 도입했고,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이에 참여한다는 뜻을 밝혔다. ‘레거시 10’에 따르면 그가 자산을 상속할 때에는 전 재산(50억달러)의 10%인 5억달러가 자선단체에 가고, 상속세는 16억2000만달러 상당이 된다. ‘레거시 10’ 없이 상속을 한다면 20억달러에 달할 상속세를 3억8000만달러 가량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kate01@heraldcorp.com

특별취재팀=홍승완·배지숙·성연진·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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