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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랭킹
상속자 워밍업코스 ‘컨설팅회사’
2014.06.12 11:14
[특별취재팀]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아들인 정기선 경영기획팀 부장과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아들인 홍정국 경영혁신실장은 1982년생 동갑내기다. 둘 다 지난해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 ‘3세 경영’ 채비에 나섰다. 입사 2년차, 초고속 승진 외에도 눈에 띄는 공통점은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미국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을 거쳤다는 점이다.

세대교체 중인 한국 재계의 후계 수업 방식이 달라졌다. 20~30년전 아버지대들은 이른 나이에 회사에 간부로 입사해 왕세자 수업을 받았지만 지금의 ‘상속자 세대’들은 외부에서 경력을 일부 쌓고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늘었다. 같은 상속자라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991년 입사)이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1995년 입사) 등은 해외 경영전문대학원(MBA)를 나와 바로 그룹 기획조정실이나 경영전략실에 입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입사하는 젊은 상속자들은 해외 컨설팅 그룹이나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실전투입 전 ‘워밍업’을 거친다.

2002년과 2006년 아시아나 항공으로 입사한 박세창 금호타이어부사장과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보도 각각 컨설팅회사인 AT커니와 보스턴컨설팅그룹 근무 이력이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아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도 동부그룹 입사 전 AT커니를 거쳤다. 두산그룹의 4세대 가운데 막내인 박용만 두산 회장의 차남 재원 씨도 뉴욕대(NYU)를 졸업 후 보스턴컨설팅에 입사했다.


재계는 ‘도제식’ 후계 수업에서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난 계기로 외환위기를 꼽는다. IMF 쇼크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 안목을 강조하면서 보다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외 경쟁 기업의 고민과 전략을 객관적으로 연구ㆍ분석하는 컨설팅 그룹에서의 경험은, 최고 경영자에게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주요 코스가 됐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도 ‘컨설팅 회사를 통한 경영수업’의 장점이다. 실제 조현상 효성 부사장은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근무하던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부친 조석래 회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사내 컨설턴트로 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의 경험은 상속자들에겐 괜찮은 근무이력이 된다. 아무나 다닐 수 없는 글로벌 조직에서 일하면서 ‘최소한의 경영능력은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산업이 돌아가는 원리를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곱지않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능력이 안되는 상속자들을 전략적으로 입사시킨다는 비판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그룹 외에 투자은행(IB)에서 경험을 쌓는 상속자들이 많다. 거대한 그룹을 이끄는데 필수인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구자열 LS 회장의 외아들 동휘 씨는 2013년 11월 LS산전 차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전 우리투자증권에서 근무했다. 구 차장은 약 2년 가까이 IB 본부에서 일했는데, 구 회장의 권유 때문으로 전해진다. 앞서 밝힌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도 보스턴컨설팅 그룹 이전에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근무했다. 외국계 IB 가운데 국내에 가장 많은 영업망을 가진 크레디트스위스는 해외 부호들의 자산관리에 강점을 가진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과 이우현 OCI사장도 크레디트스위스 그룹에서 근무했다. 크레디트스위스 홍콩법인에서 일했던 이 사장은 체이스맨해튼 뱅크에 몸 담기도 했다.

GS가(家) 4세인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은 재계에서 가장 화려한 입사 전 경력을 자랑한다. 1969년생인 허 부사장은 그 덕에 그룹 입사가 2006년에서야 이뤄졌다. 일본오사카전기를 비롯해 뱅커스트러스트(금융), IBM(IT)을 거쳐 미국 석유회사인 셰브런의 본사와 싱가포르 법인에서 근무한 허 부사장은, GS칼텍스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부법인장으로 입사했다. 7년만인 2013년에는 부사장에 승진했다. 사촌 허준홍 GS칼텍스 상무 역시 셰브런을 거쳐 싱가포르 법인에서 근무하는 등 허 부사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

두산그룹도 전통적으로 경영수업 필수 코스로 계열사 외 근무 경력을 강조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 사장과 박용현 두산그룹 전 회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도 ‘아버지의 회사’가 아닌 대한항공(1989~1990년)과 효성물산(1993~1994년)에서 근무했다. 조선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은 자녀인 박용곤 명예회장,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 박용만 회장 모두 은행에서 일해보도록 시켰다. 이 때문인지 박태원 사장은 2000년 금융투자전문회사인 네오플럭스캐피탈에 속하기도 했다.

효성도 앞서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한 삼남 조현상 부사장 외에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이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 미쓰비시상사 원유수입부에서 일한 뒤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1995~1997년)를 거쳤다.

그렇다고 모든 상속자들이 우아하게 외국물만 먹고 본사에 입사하는 것은 아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상무는 한때 GS칼텍스 주유소의 ‘주유원’으로 일했다.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출신의 허 상무는 GS칼텍스 주유원을 거쳐 영업전략팀과 강남 지사, 경영분석팀을 통해 실무경험을 쌓은 후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한 발 더 나아간 경우도 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사례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장남인 그는 1986년 동원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4개월간 원양어선 선원생활을 하며 참치를 잡았다. 동원그룹의 토대를 만들어낸 원양어선 선원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회사를 온전하게 잇지 못할 것이라는 김회장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김 부회장은 당시 하루 16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퇴선때까지 상속자라는 사실을 숨겼다고 전해진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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