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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이슈] “나는 죽을 시간도 없다” 이케아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괴짜 기업가’ 잉그바르 캄프라드
‘‘17세때 ‘가구왕국’ 이케아 창업

“부자지만 경로할인까지 받는 구두쇠
“이케아에서 낭비는 죄악” 근검절약 강조
“자산 416억달러로 세계 부호 8위 올라


[특별취재팀=배지숙 기자(스웨덴)ㆍ김현일 기자] 이 회사가 매년 발행하는 상품 카탈로그 부수는 약 2억 권으로 성경책보다 많고, 최고 인기상품인 책꽂이는 10초에 한 개 꼴로 팔린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이 책꽂이 한 개가 또 팔려 나간 셈이다.

파란색 창고형 매장을 앞세워 전 세계를 무대로 ‘가구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이케아(IKEA)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뒤에는 88세의 깐깐한 ‘구두쇠 할아버지’가 있다.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타고, 자가용으로 20년 넘은 구식 볼보만을 고수하는 그는 이케아의 창업주이자 2014년 9월 현재 416억 달러(약 43조1200억원ㆍ블룸버그 빌리어네어 기준)의 자산을 보유한 대부호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다.

그의 인생 일대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이케아가 오는 12월 국내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립식 가구와 셀프 서비스라는 이케아만의 혁신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러한 파격을 가능케 했던 ‘괴짜 기업가’ 캄프라드의 특별한 삶부터 만나 볼 필요가 있다. 


▶5세 ‘꼬마 사업가’의 등장=스웨덴 엘름휼트(Almhult)에서 태어난 캄프라드가 겨우 다섯 살이 됐을 무렵 이웃에 성냥을 파는 것으로 그의 사업 인생이 시작됐다. 당시 그는 기존의 우유 배달체계를 이용해 물건을 파는 수완을 보였다.

2년 후 품목은 더 늘어났다. ‘꼬마 사업가’ 캄프라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직접 잡은 생선과 시계, 펜, 크리스마스 카드를 파는 등 사업을 점차 확대해갔다.

1943년 그가 17세가 됐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으로 지금의 이케아를 세웠다. 이케아란 이름은 그의 이름 이니셜 IㆍK와 그가 어린 시절 누볐던 농장 엘름타리드(Elmtaryd), 고향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들어졌다. 가구를 팔기 시작한 건 1948년이었다. 지역에서 장인들이 수공예로 만든 가구들을 이케아 매장으로 들여와 판매했다. 높은 판매율에 고무된 캄프라드는 1952년부터 오직 가구와 가정용품 판매에 집중했다.

▶‘안티(anti)-서비스’로 성공=1951년 이케아의 한 디자이너가 탁자와 씨름을 벌였다. 차 트렁크에 탁자가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던 것. 그는 결국 네 다리를 떼어낸 채로 차에 실었고 집에 도착해서 탁자를 다시 조립했다. 캄프라드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플랫 팩(flat pack, 납작한 상자에 부품을 담아 팔고 이를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가구) 콘셉트의 가구를 팔기 시작했다. 고객이 직접 이케아 창고에서 필요한 가구의 부품을 고르고 그것들을 집으로 가져가 ‘알아서’ 조립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엄밀히 말하면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플랫 팩 콘셉트로 이케아는 운송비와 창고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사회주의 국가이던 폴란드로 생산공장을 옮기면서 인건비도 줄일 수 있었다. 캄프라드는 그만큼 제품 가격도 낮췄다. ‘반(反) 서비스적’이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게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신념을 지킨 것이다. 저렴한 이케아 가구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올해 창립 72주년이 된 이케아는 연간 7억명이 매장을 찾고, 매출액은 44조원이 넘는(이상 2013년 기준) 세계적인 가구 메이커로 성장했다.


▶대중교통에, 경로할인까지 지독한 구두쇠=대부호인만큼 개인 전용기를 한 대 마련할 법도 하지만 이코노미석만 타는 그의 고집이 보여주듯 캄프라드의 자린고비는 지독하다. ‘너무하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그의 투철한 절약정신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올해의 기업인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캄프라드가 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관계자들이 그를 막아섰다. 방금 막 버스에서 내린 캄프라드가 기업 오너일 거라고 그 누구도 생각 못한 것이다.

그의 자린고비는 이케아 경영방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케아 직원들은 해외출장 시에도 예외없이 이코노미석과 저렴한 호텔을 이용해야 한다. 캄프라드는 자신이 쓴 책 ‘어느 가구상의 고백’을 통해 “이케아에서 낭비는 죄악”이라고 말하며 직원들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직원은 ‘부하’가 아닌 ‘나의 동료’=캄프라드는 계급제나 위계질서 같은 수직적 문화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는 직원들을 자신의 동료(co-worker)라고 부른다. 그만큼 캄프라드는 ‘동료애’를 중요시한다.

1994년, 그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을 때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그때 캄프라드는 오너가 아닌 여러 직원들 중 한 명으로서 이케아 내 유대인 ‘동료’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캄프라드는 이미 1986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 바 있다. 그럼에도 고문으로서 이케아 경영 전반에 절약과 혁신 정신을 불어 넣으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찾아간 이케아 박물관 곳곳에는 캄프라드가 즐겨 말했다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Most things remain to be done. Glorious future!)’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죽을 시간도 없다’는 그는 은퇴를 죽음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은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과 같다. 은퇴한 사람은 빠르게 시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목표를 성취했다고 자부하는 회사는 그때부터 빠르게 생명력을 잃는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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