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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최고급 미식 논쟁 ‘미슐랭 vs 고미요’
-116년 전통 ‘미식가의 성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미쉐린家 지원받는 ‘미쉐린가이드’ 공정성 의문 커져
-新요리 뉘벨 퀴진 토대의 ‘고미요’ 1~20등급 음식평가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ㆍ민상식 기자] “이 책은 20세기 시작과 함께 태어났으며, 20세기가 지속되는 한 남아있을 것이다.”

요리 비평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The Michelin Guide)를 창간한 앙드레 미쉐린이 남긴 말이다.

요리를 예술로 간주하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쉐린가이드는 ‘미식가의 성서’로 불린다. 각국의 최고 레스토랑을 방문한 뒤 별 등급을 부여하는데, 곧 ‘미쉐린 별 몇 개’를 받았는지가 식당의 수준을 가름하는 척도로 통하기 때문이다. 

2007년 미쉐린 가이드 도쿄편 발간 당시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인 비벤덤(Bibendum)

116년 전통의 미쉐린 가이드는 현재 25개국에 걸쳐 26개 판본이 발행되고 있다. 

최근 미쉐린 가이드측이 공식적으로 밝힌바 대로 서울편이 내년 발간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도쿄(2007년)와 홍콩ㆍ마카오(2009년), 싱가포르(2015년)에 이은 네번째다. 미쉐린 가이드를 발행하는 미쉐린그룹 측은 “서울편 발간은 높아진 한국의 미식 수준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꾸준히 명성을 쌓아온 미쉐린가이드의 권위가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매년 적자를 내더라도 미쉐린가이드에 많은 투자를 해온 미쉐린 가문의 가족경영이 위기를 맞은데다, 미쉐린의 레스토랑 평가기준과 공정성을 두고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 미쉐린 별 3개를 받은 일본의 한 식당에서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식중독이 발생했고, 2013년에도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쉐린 별 2개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은 고객 60여명이 식중독을 일으키면서, 미쉐린가이드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상황이다. 

최근 판매부수도 크게 감소하면서 미쉐린가이드는 연간 2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쉐린이 주춤하는 사이 51년 전통의 미식 평론지 ‘고미요’(Gault & Millau)가 미쉐린가이드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 평론지는 성향부터 다르다. 미쉐린이 우아한 서비스와 고전 요리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고미요는 고전요리와 차별된 새로운 방식의 요리를 만드는 식당에 주목한다.

또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의 경우에는 고미요가 더 체계적이라는 평가다.
미쉐린의 경우 음식맛이 훌륭해도 기교와 세련됨 등이 떨어지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지만, 고미요는 레스토랑의 서비스 환경에 상관없이 음식의 맛에만 초점을 맞춘다.

미쉐린가이드를 만든 앙드레(왼쪽), 에두아르 형제

▶‘오트 퀴진’ 미쉐린가이드의 ‘별 셋’=미쉐린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의 미쉐린타이어 창업자인 앙드레 미쉐린,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가 발간한 자동차여행 무료 안내서가 그 시초다. 당시 타이어 교체 방법과 주유소 위치를 비롯해 각종 식당과 숙소에 관한 정보로 구성됐다.

이 안내서가 인기를 끌자 1922년부터는 유료로 팔기 시작해, 1926년 유명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을 별점으로 평가하는 ‘미쉐린 스타’를 도입했다.
1957년에는 유럽 각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소위 ‘가성비’ 높은 합리적인 가격의 훌륭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빕 구르망’(Bib Gourmand) 표시도 추가했다.

미쉐린가이드는 매년 업데이트된 정보를 실어 새로 출간된다. 2001년부터는 관광 정보를 뺀 식당 정보만 따로 묶어 ‘레드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반 여행·관광 안내서는 ‘그린 가이드’라고 부른다. 그린가이드 한국편은 2011년 발간된 바 있다.

이 책의 평점을 매기는 평가원들은 일반 고객으로 가장하고 해당 식당을 방문해, 요리재료의 수준과 창의성, 분위기, 일관성, 위생상태 등을 평가한다. 

상세 기준을 비롯해 평가원의 신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쉐린가이드에서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최고급 요리다. 소량의 여러 코스로 나오는 프랑스식 최고급 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별 3개를 받은 식당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받는다. 별 3개의 최고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은 프랑스 전체 26곳, 전 세계 약 100곳에 불과해, 별 1개만 받아도 ‘요리가 훌륭한 집’이란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에서 손님이 몰린다. 

‘맛을 보기 위해 여행할 가치가 있는 탁월한 식당’은 별 3개, ‘먼 곳까지 방문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집’은 별 2개, ‘후보 식당 중 특히 맛있는 집’은 별 1개를 받는다.

지난해 사망한 프랑수아 미쉐린그룹 전 회장

미쉐린그룹을 120년간 이끌어온 미쉐린가(家)가 지금까지 미쉐린 가이드를 운영해 왔다.

1889년 설립돼 전 세계 18개국에 11만1000여 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두고 있는 세계 3대 타이어 회사 미쉐린그룹은 창업 이후 ‘가족 경영’ 체제를 이어왔다.

미쉐린그룹 창업자의 손자인 프랑수아 미쉐린은 1955년부터 1999년까지 회장으로 있으면서, 미쉐린그룹을 세계 최고 수준의 타이어 기업으로 키웠다.

이어 프랑수아의 아들 에두아르 미쉐린이 2002년 경영권을 이어 받았지만, 2006년 보트 사고로 숨졌다. 또 지난해 프랑수아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4대째 이어온 미쉐린가의 가족경영은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는 미쉐린 가문 출신이 아닌 장 도미니크 세나르(Jean-Dominique Senard)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고미요를 창간한 앙리 고(왼쪽)와 크리스티앙 미요

▶‘뉘벨 퀴진’ 고미요의 ‘20점’=고미요는 최고급 고전 요리 오트퀴진에 대한 반발로 태어난 ‘뉘벨 퀴진’(nouvelle cuisine)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프랑스어로 ‘신(新)요리’라는 뜻의 뉘벨 퀴진은 인공적이지 않으면서, 재료의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는 조리법을 의미한다.

신문기자이자 음식평론가였던 앙리 고(Henri Gault)와 크리스티앙 미요(Christian Millau)는 ‘모든 손님이 같은 메뉴를 시키는’ 미쉐린가이드의 가치관과 다른 입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들은 1965년 새로운 음식 비평서 ‘고미요’를 창간해, 미쉐린가이드의 평가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로 고전요리에 집착하는 미쉐린과 달리 고미요는 새로운 요리 발견에 힘을 쏟았다.

평가 기준도 미쉐린가이드보다 세부적이다. 고미요는 미쉐린의 ‘별’ 대신 ‘조리사 모자’를 달아준다. 모자 하나에서 최고 넷까지 분류된다.

또 1점부터 최고 20점까지의 점수 평가를 하는데, 10점 미만이면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한다. 점수는 절대적으로 음식의 맛으로 판단하며, 맛 이외의 서비스 등에 관한 내용은 따로 첨부한다. 

음식 비평서 고미요

물론 고미요에 대한 비판도 많다. 고미요 탓에 뉘벨 퀴진에 대한 가격 거품이 심해졌다는 불만이다. 실제 적은 양의 재료를 조리해 접시에 예쁘게 담은 뒤 누벨퀴진이라는 이유로 비싼 값을 받는 레스토랑이 많아졌다.

특히 식당등급이 떨어진데 실망한 요리사가 자살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미쉐린 가이드와 고미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커지는 추세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미쉐린 별 3개 식당을 운영하던 셰프 브누아 비올리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미쉐린 스타 셰프’라는 명예 이면의 말 못할 극심한 스트레스로 그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3년에도 프랑스의 미쉐린 별 3개 레스토랑 셰프 베르나르 루아소가 고미요의 등급하향 평가에 이어, 미쉐린이 자신의 식당의 등급을 강등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자살한 바 있다.

이처럼 세계 최고 셰프들의 자살이 이어지자, 끊임 없이 등급을 매기는 음식 평론지의 낡은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요식업계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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