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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대륙부호 만한전석 18. 中, 졸업장 없는 부자 많은게 ‘자랑(?)’인가
- 후룬 “빌게이츠도 하버드 중퇴”…대륙 중ㆍ저학력 부호 찬사
- 그러나 非대졸 부호 모두 문화대혁명 때 ‘배움 기회’ 박탈, 평균 57세 고령화 진행
- 학벌 대신 공산당에 기대 성장, 당국 인ㆍ허가 관련 산업 집중
- 오늘날 젊은 기업가 ‘생태계’와 무관…‘고학력’은 선택 아닌 필수

[SUPERICH=윤현종 기자]

130억 위안.

원화로 따지면 2조 1500억 원 정도 되는 돈이다. 중국 대륙서 4년제 대학 졸업장 없이 억만장자가 된 최상위 부자 100여 명의 최소 자산 수준이라고 한다.

후룬(胡潤)연구소 소장이자 ‘푸른 눈 중국인’이기도 한 루퍼트 후게베르프는 지난 14일 이들을 분석해 발표했다. ‘영웅은 그 출신을 가리지 않는다’란 제목이다. 중국 특유의 과장 섞인 수사다. 후게베르프는 중국어로 된 관련 자료 첫 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전 세계 최상위 부자 가운데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도 하버드 대를 졸업하지 못했다”

세상이 알아주는 고학력 아니더라도, 억만장자 기업가가 될 수 있단 의미다. 

배우고 싶었으나 배우지 못했다. 대신 공산당의 ‘끈’을 잡고 올라갔다. 이제 그 줄은 더 이상 튼튼하지 않다. 고령층이 대부분인 ‘중ㆍ저학력 부자’들 면면이 이를 말해준다. 부자에게 고학력은 필수다. 한국과 비슷하게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는 중국의 현실이다. [일러스트=이해나 디자이너]

하지만 행간을 읽어야 한다. 지난 십 수년 간 이 기관의 ‘중국 부자 보고서’ 대부분은 팩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중국서 성공한 부자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잡았거나 이미 앞질렀다”는 맥락을 입힌 내용이 많았다. 후게베르프의 첫 문장은 자국 기업가를 에둘러 칭찬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 자산을 쥔 중국의 ‘중ㆍ저학력 부자’들을 5017 단어에 걸쳐 소개했다.

절대다수가 자수성가로, 온갖 역경을 극복했을 그들은 찬탄의 대상이다. 그러나 귀감(본보기)은 아니다. ‘자랑’이 될 수 없단 의미다.

이 비(非)대졸자 부호들은 빌 게이츠ㆍ마크 저커버그처럼 제발로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이들이다. 10년 간 이어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부자들은 2017년 중국선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105명의 청년시절, ‘고등교육은 없었다’=중국 전일제본과(全日制本科), 즉 4년제 이상 대학교 출신 아닌 부자 105명 중 개인자산 1위는 종칭허우(宗慶後ㆍ72) 와하하(娃哈哈)그룹 창업자다. 개인자산 18조 5600억 원을 소유한 그는 대륙 식음료 업계 거물이다. 중학교 졸업 후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10대부터 농장에서 일했다. 나머지 부호의 과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난했다’로 요약된다. 

70대로 접어든 종칭허우 와하하그룹 창업자. 그는 중졸부자다. [출처=차이나룩서스]

1940년대 후반∼1960년 사이 출생한 이들의 옛 모습이 대동소이한 이유가 있다. 1966년부터 대륙엔 “무산계급(無産階級)의 문화대혁명(이하 문화대혁명)”이 있었다. 중국 정부도 공식 사이트에서 “10년 간의 내란(十年內亂)”이라고 표현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치 운동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 중국 교육 시스템은 사실상 ‘진공상태’였다고 진단한다. 쉽게 말해 교사는 기존 교습내용을 강의할 수 없었다. 학생은 교실에서 교과서를 펴지 않았다.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입학 시험도 없어졌다.

중국 공산당 공식기록에 따르면 이 때 당은 국무원(한국의 행정부에 해당)과 함께 이렇게 발표했다.


“문화대혁명 활성화가 필요하다…(중략)…대학 신입생 선발은 자산계급의 시험제도를 벗지 못하고 있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1966. 6. 13)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6년 8월, 중국 명문학교 칭화대학 홍위병(紅衛兵ㆍ문화대혁명 당시 고교-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학생조직)들이학교 상징 중 하나인 ‘칭화원(淸華園)’의 석조 글자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출처=인민망ㆍ시나블로그 재인용]

“올해부터 시험을 취소한다…(중략)…정치를 (학생선발의) 제 1원칙으로 삼아 당의 계급전선을 철저히 관철하라” (1966. 7. 24)


실제 후룬 측이 발표한 중ㆍ저학력 부호 105명 가운데 70대인 종칭허우를 비롯, 나이가 확인된 96명은 평균 57.6세다. 55세 이상도 절반을 넘겼다. 대학을 안 간게 아니라 못 간 사람이 대부분인 세대다. 현재 이들이 일종의 ‘사이버 경영대학원(EMBA)’과정 등을 통해 뒤늦게라도 지식을 쌓으려 하는 이유다.

▶ 공산당, 엘리트 향한 ‘유일기회’=이처럼 가혹한 교육환경서도 그들은 자수성가했고, 일가를 이뤘다. 비결 중 하나는 공산당과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정규 학력 부족을 메워줄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후룬이 낸 데이터에 따르면 비(非)대졸 부자 105명 가운데 24명이 ‘전국구’ 정치행사에 참여하는 공산당원 또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ㆍ政協) 출신으로 나타났다. 정협은 일종의 국정자문기구다. 

중국 공산당의 연례행사 등이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출처=게티이미지]

지역서 활동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슈퍼리치 분석결과 105명 중 공산당 중앙ㆍ지역, 그리고 정협위원을 모두 합친 ‘붉은 부호’는 총 31명으로 집계됐다. 30% 비율이다. 이는 대졸 이상 억만장자들의 친(親)공산당 인물 비중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즉, 거부(巨富)가 되기 위한 주류의 경로를 이들 중ㆍ저학력 부호들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개발 등으로 돈을 번 중ㆍ저학력 부호 중 개인자산(9조 800억 원)이 가장 많은 루관추(魯冠球ㆍ72) 완샹그룹(萬向集團) 회장. 공산당원이다. [출처=바이두 이미지]

결국 공산당과의 공생을 통해 ‘주류’로 올라선 그들은 자연스레 정치권의 인ㆍ허가 시스템과 맞닿은 업종에서 돈을 벌어들였다. 대표적인 분야가 부동산이다. 대학 졸업장 없는 억만장자 105명 가운데 24%가 부동산 개발사업에 종사한다. 비율이 가장 높다. 일반 제조업도 19%를 차지해 뒤를 이었다.

합계 45%에 가까운 이들이 당과 맺어진 관계를 부 형성의 기회로 삼은 셈이다.

▶ 2017 젊은 부자들, 고졸신화는 없다=졸업장 없는 부자들이 중국 경제의 ‘자랑’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그들의 연령대 때문이다. 40대 이하 청년층은 1명도 없다. 무슨 뜻일까. 학력이 높지 않은 차세대 기업가는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단 의미다.

실제 중국 20ㆍ30대 최상위 억만장자는 모두 4년제 이상 대학을 졸업한 이들로 채워졌다. 석사 이상 고학력자도 상당하다.

왕치청ㆍ우옌 부부 [헤럴드DB]

각각 37세ㆍ36세인 왕치청(王麒誠) 우옌(吳艶) 부부는 대륙서 개인자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자수성가 기업가다. 선전증시에 상장된 한킴유니크(漢鼎宇佑)그룹을 이끌고 있는 둘은 창업 10여 년 만에 10억위안을 모았다. 현재 커플의 자산은 245억 위안. 우리 돈 4조 400억 원이다. 이들은 중국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저장(浙江)대 캠퍼스 커플이다.

왕타오 [출처=비주니언스타]

무인기(드론)생산업체 DJI(大疆創新ㆍ다장촹신) 창업자 왕타오(王濤ㆍ37)도 대륙 바링허우(80년대 출생자) 자수성가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그는 홍콩 최고 대학 중 한 곳인 홍콩과기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개인 자산 3조 9500억 원으로 왕ㆍ우 커플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이하 3∼5위에 랭크된 청년 자수성가 부호 또한 베이징대 또는 베이징 소재 대학교 출신이다.

가업승계형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재력은 그들의 ‘기본 학력’을 대졸자 이상으로 만들었다. 

옌제허 타이핑양그룹 회장 아들인 옌우. 난징대 대학원 출신인 그는 중국 상속부자 가운데 자산이 가장 많다. [출처=메이징왕]

개인 자산 16조 5000억 원을 쥔 옌우(嚴吳ㆍ30)는 난징대 대학원 출신이다. 그는 대륙 굴지의 건설업체 타이핑양(太平洋)건설 회장 옌제허(嚴介和)의 아들이다. 상속자 중 최대 부자로 꼽힌다.

다음으로 자산이 많은 양후이옌(楊惠姸ㆍ36)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를 나왔다. 중국 부동산 대기업 비구이위안(碧桂園) 창업주 딸이기도 한 그의 자산은 8조 원으로 집계됐다.

창업으로 큰 돈을 벌거나, 일부 상속 부자로 자리매김한 중국 청년들은 이렇듯 고학력을 갖춘 경우가 절대다수다. 바닥서부터 자수성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은 중국 젊은이에겐 와닿지 않는다.

2017년, 중국서 고학력은 이제 필수다. 아니면 창업이 아닌 취업 조차 힘들다. 전문가들은 2000년 대 후반 이후 대륙의 실업률이 10%를 넘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중국 또한 한국처럼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발적으로 하버드 대를 중퇴한 빌게이츠는 자신의 학력과 관련해 이렇게 얘기했다.

“Don‘t be like me(날 따라하지 마라)”


factism@heraldcorp.com

일러스트.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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