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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그들이 ‘여행’으로 얻은 것? 어제와 다른 오늘
2017.06.28 13:32
[SUPERICH=윤현종ㆍ민상식 기자] “인도 여행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앞으로도 항상 (그 때의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개인자산 73조 4280억 원(647억 달러)을 소유한 마크 저커버그(33) 페이스북 창업자는 9년 전 배낭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가 낯선 대륙을 찾은 것은 2008년. 창업 4년 째를 맞은 페이스북은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기로에 서 있었다. 당시 저커버그는 거의 한 달 간 인도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자기가 만든 회사의 미션, 즉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회고한다.


마크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출처=데칸크로니클]


물론, 시가총액 509조 원(4479억 달러)짜리 회사의 오늘을 가능케 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9년 전 여행의 기억이 창업자에게 일종의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저커버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무일푼 청년은 기업가로 거듭났다. 애초 백만장자였던 이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배낭여행이 가져다 준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 해고 당하고 떠난 배낭여행, ‘기회’가 됐다=조니 워드(32) 원스텝포워드 미디어(One Step 4Ward Media) 창업주는 자신의 생애에 남을 기회를 ‘배낭여행’으로 얻었다. 그는 지난 3년여 간 카리브해 지역ㆍ페루 마추픽추ㆍ북극권ㆍ마다가스카르 등 150여개국을 돌며 150만달러(17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준비한 여행 준비물은 오직 ‘노트북’ 하나였다.

북아일랜드서 태어나 사실상 전 세계를 돌아다닌 워드를 ‘금수저’라 오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흙수저’다.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으니까”라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고한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국제경제를 공부하고 취업했지만 2006년 정리해고를 당한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던 워드는 절망적인 이 시기에 배낭여행을 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보자고 마음 먹는다. 돈이 부족했던 그는 처음엔 태국과 한국 등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여행자금을 모았다. 틈만 나면 세계각국을 돌아다닌 워드는 우연히 한 여행 블로거가 자신의 온라인 사이트 하나로 한 달 수입 3000달러를 올렸단 사실을 알게 된다. 



조니워드 원스텝포워드미디어 창업자


그는 곧바로 ‘여행 블로그’를 만들었다. 기술적인 경험은 없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를 가공해 ‘세계에서 번지점프 하기에 좋은 장소 5선’ 등 테마가 있는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3000달러를 벌자 그는 영어 교사를 관두고 블로거 일에 열중했다. 워드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일기를 통해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월 수입이 꾸준히 느는 걸 지켜보니 미치겠더군요. 만약 이런 웹사이트가 5개라면? 20개라면? 저는 바로 웹사이트 제작 회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는 블로그 운영자ㆍ소셜 미디어 운영자ㆍ검색엔진최적화 링크 세일 담당자ㆍ카피라이팅 담당자 등을 고용해 원스텝포워드미디어를 세웠다. 그리고 3년만인 2015년, 누적 이익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워드는 웹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이는 한 달 광고수입만 최대 6만 달러(6800만 원)정도 된다고 밝혔다.

▶ 여행 끝 ‘빈곤퇴치’ 앞장선 부호=본리치(Bornrich)가 꼽은 영국의 여성 자수성가 부호 10명 중 하나로 주목받은 던 기빈스(57)는 1982년 22세가되던 해 아버지 고(故) 피터 기빈스와 함께 바닥재 회사 플로우크리트(Flowcrete)를 창업했다. 회사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영국ㆍ아시아ㆍ스웨덴ㆍ벨기에ㆍ남아프리카ㆍ미국ㆍ브라질 등지에 지사 30개와 공장 12개를 거느렸다. 이어 2008년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를 페인트 제조기업 RPM 인터내셔널에 8500만달러(965억 원)를 받고 팔았다. 



네팔로 여행을 떠나 ‘빈곤퇴치’를 결심한 기업가 던 기빈스(왼쪽) [출처=익스프레스 등]


그리고 바로 배낭여행 길에 나섰다. 기빈스가 선택한 나라는 네팔. 그곳에서 고아와 노숙자들을 만나 ‘빈곤’이 사람들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후 기빈스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빈곤퇴치’로 결심한다. 2009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실제로 영국 공영 방송 ‘채널4’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시크릿 밀리어네어(Secret Millionaire)’에 출연하며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브리스톨 지역에 있는 ‘와일드 구스 카페(Wild Goose Cafe)’에서 거금 25만 파운드를 들여 노숙인과 성(性)노동자 여성 7만 명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했다.

이 뿐 아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배어풋 파운데이션(Barefoot Foundation)’을 세워 실업자ㆍ고아ㆍ학대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기빈스는 한 인터뷰에서 “내 돈을 써서 가난과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을 돕고 싶었다. 많은 이들은 제가 전용기나 사며 사치를 누릴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여성 로빈후드가 되고 싶다. 나와 내 딸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빼면 모두 남을 위해 쓰고 싶다”라고 밝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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