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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휠체어 타고 하늘로 비상 “널 만나고 새가 됐다”
클로에 로프터스&로드니 벨 인터뷰
장애·비장애인 구성 뉴질랜드 공연단체
5일 한강노들섬 ‘우리 사이의 공기’ 공연
“모두가 열망한 연대의 삶 메시지 담아”
뉴질랜드 공연단체 클로에 로프터스&로드니 벨이 ‘서울서커스페스티벌’에 초청,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대표작인 ‘우리 사이의 공기(Air Between Us)’를 보여준다. 해당 공연 모습 [서울문화재단 제공]

멀게는 1m, 가깝게는 10㎝.... 서로를 끌고 당기는 두 사람 사이로 고요하고 깊은 숨이 내려앉는다. 가느다란 줄에 의지해 지면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두 사람, 하늘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손과 발을 맞잡는다. 비장애인 안무가 클로에 로프터스와 휠체어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애인 퍼포머 로드니 벨. 거꾸로 매달린 벨의 휠체어를 지탱하는 줄 위에 선 로프터스의 등 뒤로 새파란 하늘이 청명하게 내려 앉는다.

“클로에는 저에게 새(Bird)와 같은 존재예요. 세상을 보는 관점, 내 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준 사람이죠.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춤은 온 몸의 감각을 깨우는 작업이에요. 공중에 떠서 춤을 만들어갈 때마다 내 몸 안의 장기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생생히 느껴져요.”(벨)

뉴질랜드 공연단체 클로에 로프터스&로드니 벨이 한국을 찾는다. 서울문화재단이 올해로 7회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서커스페스티벌’에 이 단체를 초청했다. 이 단체는 5일 서울 용산구 한강 노들섬에서 대표작인 ‘우리 사이의 공기(Air Between Us)’를 보여준다.

너와 나 사이의 공기...서로의 세상에 뛰어들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으로 장애를 안고 있는 벨과 유럽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로프터스, 두 사람은 태어난 나라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다.

내한을 앞두고 최근 화상 인터뷰를 가진 로프터스와 벨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차이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방법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이의 공기’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감염병이 닥쳐왔을 무렵 창작됐다. “세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 공동체의 분열을 경험하며 소통과 교감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던 때”라고 로프터스는 회상했다.

“제목이 말하는 ‘공기’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숨이자 벨과 나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는 공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기를 의미하기도 해요.”(로프터스)

로프터스의 이야기를 듣던 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오리족은 인사를 나눌 때 코를 비비는데, 이는 서로의 숨을 교환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객과 호흡을 나누고 흐름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제목 ‘우리 사이의 공기’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세계를 살던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섞인 적이 없었던 두 움직임,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은 ‘영감의 씨앗’이자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벨이 휠체어에 앉아 보낸 시간은 33년. 사고 이전의 그는 ‘스포츠광’이었다. 수영, 농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난 가슴 밑으로는 감각이 없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활할 수 있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지난했던 재활의 날들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져다줬다. 긍정과 역동의 삶이었다.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것도 부산에서 열린 국제장애인농구대회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뛰기 위해서였다. 당시 유소년 농구팀 코치가 지금의 벨이 속한 댄스 컴퍼니의 감독이다. 그 때의 인연이 춤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다.

춤과 음악을 사랑했던 소녀 로프터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으로 ‘전업 댄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아한 강인함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로프터스는 이미 세계적인 댄서이자 안무가였지만, 그에게 벨과 만남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처음엔 우리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어요. 두 세상이 만날 수 있을지 탐구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작품을 끝내고 나면 관객들의 마음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지워지고, 변화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내가 로드니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어 참 감사해요.”(로프터스)

장애·비장애, 모든 장벽을 넘어 하늘을 나는 20분

땅에서 움직임과 하늘에서 움직임은 말 그래도 ‘하늘과 땅 차이’다. 벨은 “굉장히 인내심을 가지고 내 안에 있는 힘을 모은다고 생각하고 공연을 시작한다”며 “우리의 안무는 각자의 에너지를 한 겹 한 겹 쌓아올려 완성된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줄에 매달리는 것은 상상 이상의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벨은 “장애 예술가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며 “클로에와 작업이 내게 창의적인 세계를 열어줬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애초 공연을 기획할 당시엔 ‘즉흥’의 춤을 시도했지만, 보다 안전한 공연을 위해 리서치 과정을 거쳐 안무를 창작했다. 로프터스는 “이 과정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춤으로 확장해갔다”고 했다.

하늘을 무대로 삼는 모든 장면들이 두 사람의 수많은 연구와 연습을 거쳤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벨이 하늘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공간의 크기, 휠체어의 바퀴가 만들어내는 흔적, 휠체어가 구를 수 있는 속도, 휠체어가 공중에서 돌아갈 때 필요한 공간.... 벨은 “이 모든 것은 클로에와 내가 같은 에너지로 균형을 맞추며 둘 사이의 공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로프터스와 벨이 가는 곳은 어디나 무대가 된다. 분주한 도시의 건물 사이, 평화로운 공원의 한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은 경이로운 순간을 만든다. 공연장을 벗어나자 “극장을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접근성이 커졌고, 실내 공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벨은 “야외 공연은 배리어 프리의 의미가 크다. 장애, 비장애, 노인, 아이 모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다”고 했다.

하나의 하늘을 공유하는 시간은 단 20분, 로프터스와 벨은 세상의 모든 다양성을 수용한다. 이곳에선 장애도 나이도 공간에도 한계와 장벽은 없다.

“개인의 차이를 공유해 어떤 마법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공연을 마치면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돼요.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개인으로서 열망하는 것은 서로의 연결, 연대였다고 느껴요. 우리의 몸짓이 연대하는 진정한 삶의 방식을 담았다는 자부심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어요.”(로프터스)

“제게 춤은 보편적 언어예요. 춤은 나와 클로에 사이의 장애를 허물고, 우리 사이의 공기를 허물죠.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는 공연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몸짓이 어우러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다름을 허물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춤의 언어를 나누고자 합니다.”(벨)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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