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부산·경남의 ‘변심’이 심상찮다…그러나 사실, 그곳은 애초에 야성이 펄떡이는 곳이었으니…
동남아 신공항 무산 이어부산 저축은행 사태까지…
민심변화 예사롭지 않아
안철수·박원순·조국·문재인…
새롭게 부상한 범야권 주자들
모두 PK출신 정치권 돌풍
TK보다 대안세력에 우호적
탈한나라당 가속화 조짐
권력지형 흔들지 주목
내년 두 차례의 큰 선거(4월 총선ㆍ12월 대선)를 앞두고 PK(부산ㆍ경남) 지역이 전국 최고의 ‘핫존’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텃밭이었던 PK 지역의 민심 변화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역의 선거 판도에 따라 권력지형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이 현재로선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나라당에 든든한 우군이었던 PK의 표심이 흔들릴 경우 전체 판세에 결정적 변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PK는 현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물 건너간 데 이어 부산저축은행 사태까지 터지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변심’이 속출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죽는 소리’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게다가 한진중공업 사태가 벌어진 부산에 민주당 등 야당이 집중 공략에 나서는 등 야권이 PK 지역을 정권 재탈환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야도본색(野都本色)’ 드러내나=영남은 항상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것 같지만, 사실 PK와 그중에서도 부산은 ‘전통적 야도’였다. 1967년 제7대 총선부터 3당 합당 전인 1988년 13대 총선까지, 군부 정권 계열의 공화당ㆍ민정당은 부산에서 신민당ㆍ민주당 등 야당 경쟁자보다 많이 득표한 적이 없다. 단, 신군부 쿠데타 직후 야당이 무력화된 채 치러진 1981년 총선만 예외다.
지난 지방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정길 전 장관은 부산 민심을 두고 “지금 부산에는 ‘3당 야합’ 이전 야도(野都) 시절 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12ㆍ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배지를 달았던 경력이 있는데, 그때 분위기가 연상될 만큼 ‘밭의 토양’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또 PK가 TK(대구ㆍ경북)보다 ‘비(非)한나라당’을 대안 세력으로 택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TK의 경우 어찌됐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는 여권 유력주자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민주당 등 다른 야당을 붙들기엔 제약이 있어 보인다.
상대적으로 PK는 현재의 야당을 정치적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데 저항이 덜한 편이다. PK는 이미 한 차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해낸 바 있기 때문이다. 또 PK는 자기지역 출신의 대권주자가 마땅히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아쉬움이 ‘탈한나라당’ 현상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PK 출신 野인사들 선봉에=이런 가운데 최근 범(汎)야권에서 새로운 정치주자로 떠오른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PK 출신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 부산 토박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부산에서 나왔다. 안 원장은 부산고, 조 교수는 혜광고를 졸업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산으로 옮겨 경남고를 졸업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변호사는 경기도 출신이지만 태어난 곳은 경남 창녕이다. 문 이사장과 박 변호사는 사시ㆍ사법연수원 동기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이 지역 출신의 인사들이 정치권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안 원장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여론조사에서 유력주자인 박 전 대표와의 가상대결에서 접전을 펼치는 결과를 보이고 있어,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제2의 돌풍’을 일으킬지를 두고 정치권의 눈은 여전히 그를 향해 있다.
▶민심 ‘바로미터’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PK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험무대는 다음달 26일 치러지는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한나라당 소속인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잇달아 4선을 한 곳이다 그 위세에 밀려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 당시 후보도 내지 못했다. 지난 구청장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지역에선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적지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가 현 정부 심판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는 한편 엄연히 전문행정가를 뽑는 선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감안해서인지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9일 1년3개월 만에 부산을 방문했고, 홍준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이 지역 방문도 잦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곳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총선에 출마했던 지역인 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단일후보로 치러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선거판을 키우고 있다. 문 이사장이 동구청장 선거과정에 지원을 나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은 정영석 전 부산시 기획관리실장을 공천했다. 행시 23회 출신으로 금정구ㆍ해운대구 부구청장, 부산시의회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반면 야 4당은 민주당의 이해성 전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내세웠다. 부산고 출신으로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