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탄수화물이 이토록 미움을 받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처단할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탄수화물이다. 일명 ‘저탄고지(탄수화물 최소화, 지방은 많이 먹는 식단)’로 불리는 케토제닉의 유행, 그리고 전 세계적인 ‘프로틴(단백질)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탄수화물은 식탁에서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대한내분비학회·대한당뇨병학회·대한비만학회·한국영양학회·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등 5개 전문학회는 이미 공동성명서를 통해 "(저탄고지는) 탄수화물과 지방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과 행동을 몰아가는 위험한 식사법이자,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적인 식단"이라며 무분별하게 따르지 말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하루에 최소 100g 정도의 탄수화물은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면 우리 몸의 연료인 포도당이 고갈되기 때문에 체지방 분해로 생성된 케톤산을 대체 연료로 사용한다. 이 케톤산이 증가하면 근육과 뼈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뇌로 가는 포도당이 줄어들면서 집중력이 저하되고 몸에 유익한 복합당질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일이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의료계의 지적이다. 우리 몸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통해 ‘탄수화물 부족 위험’ 경고등을 깜빡거릴 수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탄수화물이 우리 몸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필수영양소라는 얘기다. 탄수화물 섭취가 제한되면 가장 먼저 체력과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탄수화물 제한 다이어트를 장기간 하게 되면 피로감이 쉽게 몰려오고 회복력도 느려진다. 공부나 회사 업무를 할 때는 집중력도 떨어지기 쉽다. 뇌의 주요 에너지원은 바로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뇌의 핵심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인지 기능이 저하될 수 있고 동시에 무기력감이나 불안 등 정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탄수화물 섭취 시 우리 몸에서는, 일명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지만 이를 극도로 제한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돼 우울하고 예민한 감정이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내 과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일년간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한 이들은 우울증·불안·분노를 더 많이 호소했다.
식탐이 생기는 것도 문제다. 탄수화물로 구성된 음식이나 간식을 극도로 제한하면 오히려 식탐이 강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다음날 정제 탄수화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으로 폭식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가 자신의 식욕을 절제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만 식욕은 의지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문제다.
탄수화물을 대신해 고기와 같은 동물 단백질만 섭취한다면 통곡물이나 채소 섭취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소화불량이나 변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기름진 고기의 과다 섭취는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건강한 다이어트식단은 접시의 절반을 과일과 채소로 채우고, 나머지 25%는 단백질, 그리고 남은 25%는 통곡물처럼 정제하지 않은 탄수화물을 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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