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우리 조상들이 먹어온 영양소 풍부한 건강식
-식물성 트렌드ㆍK-푸드 인기 힘입어 해외에선 다양한 제품 출시 이어져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비빔밥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것”, “식문화가 부족해 비빔밥으로 흥분하는 한국”.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기사인 ‘한국 드라마, 중국 브랜드 비빔밥 제품 노출로 비난 불러’가 보도된 후 중국 누리꾼들이 이 같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중국 누리꾼들의 폄하 발언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 있다. 비빔밥은 이미 해외에서도 ‘영양이 뛰어난 건강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빈센조'의 중국 브랜드 비빔밥 간접광고 논란을 보도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기사 [서경덕 교수 인스타그램 캡처] |
논란의 시작은 드라마 ‘빈센조’에서 배우 송중기가 중국산 제품인 비빔밥을 먹으면서 비롯됐다. 중국의 김치·한복 원조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해당 PPL(제품 간접 광고)은 신중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이번에도 관련 기사를 통해 중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매체는 파오차이(중국의 절임채소)가 국제표준화기구 산업표준으로 제정된 후 “김치 종주국 한국의 굴욕”이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파오차이는 김치만큼 미생물 증식이 일어나지 않아 발효의 건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비빔밥 논란도 마찬가지다. 비빔밥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 고유의 특성을 저마다 살려낸 건강식이다. 한 데 모아 섞었으나 섞이지 않은 맛을 가졌다.
한식진흥원 ‘한식포털’ 자료에 따르면 비빔밥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여러 재료를 한데 모아 뒤섞는 것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개체를 하나로 모으는 ‘조화’와 ‘융합’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인간문화재인 정길자 궁중병과연구원장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가 있어 우리나라의 국제행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비빔밥”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비빔밥을 김치 등과 함께 대표 한식으로 내세우자는 전문가 의견도 많다”고 했다.
해당 장면은 외국 시청자에게 비빔밥이 자칫 중국 음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비빔밥을 먹었을까.
‘한식포털’ 자료에서 비빔밥은 흰밥에 나물·고기볶음·튀각 등 여러 반찬을 비벼 먹도록 만든 보편적인 일품요리로,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했고, 궁중에서는 ‘비빔’이라고 했다. 인간문화재 정길자 원장은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요리책 ‘시의전서’에서 ‘골동밥’(뒤섞인 밥)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학자들은 훨씬 이전부터 조상들이 먹어왔다고 본다”며 “비빔밥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다”고 소개했다.
전주비빔밥의 경우 종가집에서 제사를 지낸 뒤 많은 참석인들의 밥을 한 상에 차려내기 어려워, 제사에 올렸던 나물을 섞어 비빔밥으로 올렸다는 설이 있다. 비빔밥 형태의 헛제삿밥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경상도 진주에 부임한 안찰사가 그 지역의 제삿밥 맛에 반해, 제삿날이 아닌데도 제사인 것처럼 헛제삿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여름철 농사를 지을 때 광주리에 담아온 밥과 고추장, 참기름, 나물거리를 섞어 먹었다는 설, 섣달그믐날 남은 찬밥을 없애려 비벼먹었다는 설도 있다.
비빔밥은 외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음식이다. 진주에서는 화반(꽃밥)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얀 쌀밥위에 다양한 색채 나물들이 놓이고, 계란 노른자가 중앙에 올려져 있어 마치 식탁에 작은 화원을 옮겨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비빔밥은 몸에 좋은 나물과 생채가 어우러진 건강한 자연식으로 알려져 있다. 정길자 원장은 “소화가 비교적 잘되는 밥”이라며 “길이가 있는 나물 때문에 많이 씹을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침샘의 소화효소가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해외의 매체들도 비빔밥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여러 차례 조명한 바 있다. 미국의 일간 뉴욕포스트는 지난 2017년 영국의 저명한 의학저널 ‘더 랜싯’(The Lancet)에 발표된 논문을 인용해 “비빔밥이나 김치와 같은 전통 한식이 한국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전했다. 조슈아 로젠탈 뉴욕통합영양협회 설립자는 이 매체에서 “비빔밥은 소화가 잘되고 건강한 식재료를 가득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양에서는 비빔밥을 ‘데쳤거나 생 것의 채소를 넣은 샐러드 조합’으로 여겨진다. 채소에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물질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특히 식이섬유가 다량 함유돼 있다. 포만감은 높이되 열량은 낮춰주며,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영양소들이다. 여기에 살짝 뿌려지는 전통 기름인 참기름·들기름은 채소에 부족한 불포화지방산을 보충해주면서 영양균형을 맞춰낸다.
비빔밥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실제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 2019년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관광 활동 부문에서 ‘식도락 관광’은 만족도가 높은 2위에 올랐다. 한식 평가에서 비빔밥은 불고기(41.9%)에 이어 2위(35%)에 오르며 인기를 입증했다. 누룽지가 일품인 돌솥비빔밥, 고소한 육회비빔밥, 화려한 전주비빔밥, 고기없는 비건(vegan, 완전채식) 비빔밥 등 재료와 조리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미국의 ‘블루 에이프런’(Blue Apron)의 ‘비빔밥 밀 키트’ [블루에이프런 홈페이지 캡처] |
최근 해외에서는 식물성 트렌드·K-푸드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파리 및 뉴욕지사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빔밥이 밀키트(Meal Kit, 손질된 식재료와 소스, 레시피로 구성된 박스)형태로 출시되면서 한식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외에도 ‘비빔밥 소스’나 ‘비빔밥 컵’, ‘비빔밥 완조리 냉동식품’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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