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매매계약 파기 사례 늘어
배액배상해도 매도자들 “안 파는 게 이득”
서울 강북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 한 달여 전 인천의 한 아파트를 계약한 30대 A씨는 갑자기 매도자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계약 당시 6억원대였던 아파트값이 최근 1억원 이상 뛴 데다 호가로는 10억원 선까지 오르니 매도자가 집을 팔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사계획을 세워뒀던 A씨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받는다고 하더라도 집값이 그새 많이 오른 데다 매물이 워낙 없는 상황이라 눈앞이 막막하다. 매수 문의만 하면 가격을 올리고 매수 의사를 밝혀도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기 일쑤였다. 당장 한 달 안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A씨 가족은 거리에 내쫓길 판이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집주인이 매매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계약 후 잔금일까지 한두 달 만에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집값이 오르면서 계약금의 두 배를 물어주더라도 팔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매물 잠김으로 수급 불균형이 악화되면서 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우위에 있는 매도자가 ‘슈퍼갑’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A씨의 경우처럼 매도자가 매매계약을 파기할 경우 계약금의 배액(2배)을 배상해야 한다. 통상 계약금이 전체 거래대금의 10%이지만, 가계약금으로 계약금의 극히 일부만 입금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계약 파기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게 공인중개업계의 전언이다. 집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뛰다 보니 배액배상을 하더라도 남는 장사라고 본다는 얘기다. 중도금 납부일을 앞두고 계좌를 닫는 매도자도 있다고 했다. 중도금이 오간 경우 계약 파기가 불가능하다.
서울 강서구의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계약하고도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집주인 입장에선 손해보고 팔았다는 생각에 계약을 깨는 것”이라며 “매물이 마음에 들면 일단 가계약금부터 넣고 보는 매수자도 있는데 가계약금만 오간 거래가 엎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매매계약 파기 피해를 호소하거나 계약 파기를 우려하는 이들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중도금을 미리 치르고 싶어도 매도자가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거나 중도금 납부일을 지키지 않아 문제 삼을까 걱정된다는 절절한 사연도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를 매수했다는 B씨는 “매도자 측 파기로 한 차례 계약이 무산됐는데 이번에 계약한 아파트도 한 달 새 호가가 2억원이 올라 파기될까 걱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수자는 계약 이후 매매금액을 높이자는 일부 매도자의 무리한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고 한 중개업자는 귀띔했다.
이러한 현상은 매도자 우위 시장 상황에서 집값 상승세가 계속된 영향이 크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감으로 수요가 줄었지만 공급이 더 많이 줄면서 매도자가 시장에서 오랜 기간 우위를 점했고 그로 인해 매수자가 사실상 교섭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달 30일 기준 111.7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4월 한 달과 7월 둘째주만 제외하고 110선을 상회하고 있다.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거래 가능한 매물 자체가 크게 줄어든 영향도 크다.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정부의 규제로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갔고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3만9733건으로 8월 이후 4만건을 한 달째 하회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매물건수가 4만건 아래로 떨어진 건 지난 2월 이후 6개월 만이다. 경기와 인천도 매물이 소진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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