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찾는 ‘특별식’에서 ‘일상식’으로
2040년에는 “고기보다 대체육 더찾아”
국내에서도 건강 관심 높아지며 시장 확대
지난해 대체 단백질 시장 1조원 상회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위치한 비건 레스토랑 ‘푸드더즈매터’에서 선보인 대체육이 들어간 햄버거, 두부와 당근으로 만든 에그마요·훈제 연어 샌드위치 3종. [신주희 기자] |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계란 없이 만든 에그마요 샌드위치, 육즙이 한 가득 배어 나오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햄버거 패티, 식물성 치즈가 올라간 타코’
밥상 위 메인으로 자리잡던 ‘고기’가 사라지고 있다. 일부 채식주의자들의 식탁으로만 여겨졌던 ‘고기 없는 밥상’은 이제 주변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에서부터 커피 전문점의 샐러드까지 ‘고기’를 대체하는 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백질의 주요 원천으로 꼽혔던 고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대체육에서부터 시작된 ‘신(新) 단백질 전쟁’은 계란, 우유 등으로까지 범위를 무한 확장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이 최근 내놓는 신제품엔 어김없이 ‘단백질 강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대두, 완두콩에 씹는 맛과 찰기를 더하기 위해 삶은 고구마, 곡물을 넣고 그릴향으로 풍미를 더한 햄버거 패티. 여기에 바싹 구운 가지 베이컨과 캐슈넛을 갈아 만든 것에 뉴트리셔널 이스트로 쿰쿰한 냄새를 더한 치즈를 얹고 비트로 만든 케첩, 두유로 만든 와사비 마요네즈 소스를 감자튀김과 곁들이면 영락없는 수제 햄버거 세트가 준비된다.
2시간 동안 눌러 수분을 뺀 으깬 두부에다가 달걀에서 나는 유황향을 더하기 위해 블랙솔트(암염에서 추출된 소금 결정)을 넣으면 감쪽같이 에그마요 스프레드도 완성된다. 소고기가 들어간 수제 햄버거, 계란으로 만든 샌드위치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동물성 단백질’이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위치한 비건 레스토랑 ‘푸드더즈매터’는 ‘힙한’ 음식과 건강한 맛에 비건이 아닌 이들도 즐겨 찾는다. 이 식당에서 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는 ‘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 농심의 채식 브랜드 ‘베지가든’의 ‘브이민스’ 등 대체육을 활용한다. 물론 제품 자체로만 완벽한 고기 맛을 재현할 수는 없는 탓에 매장에서는 감자와 고구마, 버섯과 양념 등을 추가해 직접 햄버거용 패티를 빚는다.
대체육은 식물에서 단백질을 뽑아내 만든 ‘추출육’과 실험실에서 동물의 배아 줄기 세포를 키워 인공적으로 고기를 만드는 ‘배양육’으로 나뉜다. 배양육은 가격이 비싸고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육류와 가장 유사한 맛을 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2030년에는 대체육이 전 세계 육류 시장의 30%, 2040년에는 60% 이상을 차지해 기존 육류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됐다. 또 매킨지가 지난 7월 공개한 배양육 시장성장 시나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배양육 시장은 2025년에는 20억 달러(약 2조 30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예전에는 콩이나 버섯, 밀 등이 대체육의 주재료였다면 최근에는 쌀 단백질, 코코넛 오일, 병아리 콩 등 활용하는 재료도 늘었다. 시장 규모도 커지자 단백질 추출 및 재료 배합 기술도 발전했고 덩달아 대체 단백질의 맛도 정교해졌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8년 181억 1940만달러(한화 21조 4533억원)이던 대체육 시장은 ▷2019년 207억 4310만달러(22조 645억원) ▷2020년 207억 4310만달러(24조 5598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건강과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지난해부터 대체육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5123억원이던 대체육 시장은 ▷2019년 4963억원 ▷2020년 5129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국내 식품 업계도 대체육 사업에 뛰어들면서 너겟, 슬라이스햄, 햄버거 패티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롯데푸드는 지난 2019년 4월 식물성 대체육류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론칭했다. 농심도 지난 1월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고 식물성 대체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농심은 ‘HMMA(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 공법을 바탕으로 떡갈비·만두 등 완제품은 물론 간 고기 형태의 ‘브이민스’도 출시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 7월 대체육 브랜드 ‘배러미트’를 론칭하고 콜드컷(슬라이스 햄)을 선보였다.
대체육뿐 아니라 젖소 없이 만든 우유, 닭 없이 만든 달걀로까지 대체 단백질이 범주가 넓어졌다. 유제품 대체 식품이던 두유에서 아몬드 브리즈, 코코넛 밀크, 오트 밀크 상품이 지난 2~3년 간 새롭게 출시됐다. 미국의 푸드테크 기업 잇저스트는 녹두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강황을 섞어 개발한 식물성 계란인 ‘저스트 에그(Just Egg)’를 지난 2019년 선보였다. 저스트에그는 이달 SPC그룹과 손을 잡고 국내에 첫 출시되기도 했다.
실제로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세계 유제품 대체 식품 시장 규모는 ▷2018년 160억 9530만 달러 ▷2019년 161억 6410만 달러 ▷2020년 156억 2860만 달러 ▷2021년 177억 5320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육 시장이 2019년에는 주춤했던 것에 반해 대체 유제품 시장 규모는 ▷2018년 5211억원 ▷2019년 5425억원 ▷2020년 5626억원 ▷2021년 5867억원으로 4년 전에 비해 12.5%나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 공장식 축산이 낳는 각종 전염병에 대한 우려, 그로 인한 식자재 공급 차질 등 육식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됐다. 이런 이유로 고기 대신 대체육을 찾는 이들이 생겨났고 기술의 발달로 고기와 거의 유사한 맛의 제품이 출시 되자 대체육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실제로 마켓컬리에 따르면 비건 식품 판매량은 지난 2019년엔 전년 대비 183%, 2020년에는 2019년 대비 108% 증가했다. 2020년 판매량은 2018년과 비교해 489%, 약 5배 가까이 늘었다. 또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비건 식품 판매량을 살펴보면 전년 동기 대비 121% 늘었다.
유통 채널에서 판매되는 비건 식품, 대체 단백질 상품의 수도 덩달아 대폭 늘었다. 마켓컬리에서 판매되는 비건 식품 상품의 가짓수는 2019년은 전년 대비 76%가 늘었고 2020년은 전년 대비 56%나 증가했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03개에 불과하던 비건 식품은 ▷2019년 563개 ▷2020년 1288개 ▷2021년 8월까지 1851개로 대폭 늘었다. 4년 전과 비교해 약 17배 가량 는 것이다.
김보경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으며, 공장식 축산에서 우려되는 각종 전염병의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식자재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대체육의 장점”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의 성장에 힘입어 대체 단백질식품은 ‘특별하고 신기한 제품’에서 ‘일상적 소비제품’의 범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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