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조정 강제성 없어 실효성 의문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 작동 중인 크레인 모습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 [연합] |
[헤럴드경제=이준태 기자] 정부가 지난 26일 내놓은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 중 공사비 갈등 해소 방안에 대해 건설업계와 정비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신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통해 도심공급기반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없으며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을 부풀리거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지적까지도 나온다. 반면, 최근 정비사업의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는 신탁사는 일종의 ‘독소조항’이 빠졌다며 반색을 표했다.
27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부동산 공급 대책에는 공사비 분쟁 등으로 중단·지연 없는 정비사업 추진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비사업 추진 주체가 시공사 등과 계약 체결 시 컨설팅을 지원하고 전문가 파견, 분쟁조정협의체를 구성하겠단 내용이다.
여기에 계약단계에서부터 공사비 증액 기준 등 필수사항을 반영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게 했다. 공사비 갈등이 벌어졌을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검증 요청이 가능하도록 하겠단 방침이다.
그러나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 등에선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에도 사업비 이자 부담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조합원들의 자금 조달 부담에 대한 문제점을 짚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조정 수순을 밟게 되면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데, 공사비 이자 부담은 그대로다. 비용은 오롯이 조합원들의 몫”이라며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조정 과정에서도 건설사는 법무팀 등을 보유해 전문성을 갖췄지만, 조합은 상대적으로 비전문적이어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내 소규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소규모 사업지 대상인 사업비 융자 지원 등은 이미 받고 있다”며 “부동산 PF 대책 등 시공사 자금 조달에만 집중돼 조합 입장에서 체감할 만한 대책이 없다. 다른 소규모 사업지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통상적으로 조정 절차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에 따라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단 설명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분쟁이 있는 정비사업지는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며 “분쟁조정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도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갈등에 관한 정부 발표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가이드라인인지 강제성을 부여할 것인지 추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사비 증액 기준을 위한 표준계약서 도입과 재협상 여력 확대 등은 민간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핵심 방안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신축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연구원은 “민간 공사비 유연성을 늘리게 되면 동시에 분양가가 확산되는 부작용이 있다”며 “분양가 인상 수준이 통제된 분양가상한제 적용 공공물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반해, 최근 도시정비 시행자로 나서고 있는 신탁사에선 반색을 표했다. 이번 정부 대책 중 신탁 방식 속도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토지 면적 등기 3분의 1 이상 신탁 조항을 제외한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주 4분의 3 이상의 동의 서명만 있으면 신탁사를 시행자로 선정할 수 있다. 경미한 변경사항도 주민대표회의에 위임할 수 있어 사업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단 설명이다.
그동안 신탁사의 토지 신탁에 대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신탁업계에 따르면, 한 정비사업지에선 공사 도중 토지 소유주들이 등기 이전을 거부하며 토지 3분의 1 이상 신탁 요건에 맞지 않아 공사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재원과 인력은 한정적인데 정부 대책으로 사업 시행 기간이 줄어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효율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부분도 주민 총회나 불필요한 형식적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경미한 사항을 주민 총회에 맡길 수 있어 확실한 속도 제고 방법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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