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예외 없는 빈집
개발계획 무산·원주민 이탈 가속화에 빈집 많아져
화장실도 없어 주민 불편 호소
서울시 “시설물 개선 중, 차차 나아질 것”
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한 빈집 입구 계단이 콘크리트 자재로 가려져 있다. 이준태 기자 |
[헤럴드경제=이준태 기자] “내가 여기서만 50년 넘게 살았어요. 지반이 암석이라 하수도를 설치 못해 화장실도 없으니까 외국인 근로자도 안 들어와요. 그러니 세도 못 주고 빈집으로 남아 있죠. 언덕이 험한데 슈퍼가 없으니까 할머니들이 창신시장까지 걸어갔다 여름이면 뙤약볕에 올라오다가 10번 정도 쉬고 겨우 옵니다. 개발계획은 20년 넘게 끌었는데 지반도 공사하기 안 좋은 환경이고 노인밖에 없는데 아파트가 들어서겠나요.”(서울 종로구 충신동 거주 80대 A씨)
“지금 사는 집도 낡고 수리도 힘들어서 살기 어려워요. 도로도 없어서 차도 못 와요. 열악하니까 원주민도 많이 떠났어요.”(서울 종로구 옥인동 거주민 80대 황모 씨)
지난 27일과 30일, 양일간 찾은 종로구 옥인동과 충신·이화동. 이곳들은 서울 광화문과 종로 등과 가까운 도심권에 있다. 이 동네에서 불과 도보 10분 거리인 곳에서는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과 출근을 재촉하는 직장인,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인왕산과 낙산 바로 밑 고지대에 위치했고 좁은 도로 틈으로 주택이 난립한 탓에 한 집 건너 빈집이 목격됐다. 효자동과 혜화동에서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잡초만 무성하거나 창틀은 섀시의 흔적 없이 텅 비어 있고 몇년간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는 듯한 흉물스러운 모습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거리엔 프로판가스(LPG)통들이 보이며 도시가스도 연결이 안 된 모습이었다. 올라가는 길목은 사람 하나가 겨우 이동 가능한 비좁은 통로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기도 했다. 옥인동과 충신동 등은 2017년 재개발구역 지정이 취소되면서 빈집이 늘어났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한 빈집 입구가 무성한 잡풀로 가려져 있다. 이준태 기자 |
서울 종로구 이화동 소재 한 집이 방치돼 있다. 이준태 기자 |
효자동에서 옥인동 초입에 들어서면 일부 공간에서 주차장을 신축하거나 주택 일부를 개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빈집촌’이 보인다. 이곳 주민은 도시가스나 상수도 등이 들어왔지만 소방도로 확보가 안 돼 있어 차 한 대 지나가기도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이유로 정비나 개조를 위해 업체를 불러들이려 해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보니 원주민도 떠난 것이다.
또 빈집이 여전히 많아 슬럼화돼 치안의 위협을 느낀다는 주민도 있었다. 효자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B씨는 “대통령실이 이전함과 동시에 전경들도 일부 철수했기 때문에 여성이나 노약자가 불안해한다”며 “밤에 혼자 나오지 않고 개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세입자들에게 이 지역을 소개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주거지 대문 밖에 액화가스통(LPG)이 놓여 있다. 이준태 기자 |
옥인동과 충신동 등은 도시주거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도시주거환경정비법상 도시재생을 위해 주거환경정비 시행자를 선정하기 위해선 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시행하려는 경우에는 소유자 또는 지상권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와 세입자 세대수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충신동 등 지역에선 외지 투자자들이 많고 소유주 소재도 불분명해 과반수 동의를 받기 어렵다. 다만 건축물 붕괴 우려로 긴급히 정비사업이 필요할 경우 시장과 군수 등은 직권으로 시행자를 선정할 수 있긴 하다. 그럼에도 빈집촌 주민은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고지대에 위치해 정비업체가 들어오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충신동 재개발추진위원회 한 관계자는 “외지에서 수십년 전부터 개발 소식을 듣고 투자한 이들이 60%에 이른다”며 “정비를 하려고 해도 트럭이 못 다니니 장비나 자재들을 하나하나 이고 올라와야 하는데 누가 들어오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건동 공인중개업소 대표 C씨는 “가끔 고객들에게 이화동이나 충신동을 소개해주면 사대문 안에 이렇게 낡고 빈집이 많냐며 놀란다”며 “한 외지 투자자의 경우 집을 매각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소유 집주소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집에 고지서들이 쌓여 있다. 이준태 기자 |
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을 정비하고 5년마다 빈집 실태 전수조사를 하고 있지만 직권으로 빈집을 처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빈집이더라도 기본적으로 등기부등본상 사유지”라며 “구청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와 용산구는 서울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자치구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2019년 12월 기준 서울시 빈집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빈집 2970여개 중 300여개가 종로구와 용산구에 몰려 있다. 옥인동과 충신동을 비롯해 ‘북촌형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빈집으로 남은 곳이 종로구의 빈집 가구 순위를 끌어올렸다.
서울시 등 지자체도 이를 인식하고 개선하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옥인동엔 소방도로를 착공했다. 최근 마련된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법)’을 통해 지역이 슬럼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조치나 철거 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소유주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등 소유주 관리 책임 강화방안을 가속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개발계획 등에 대해 상반된 계획이 많아 재생사업이 지체됐지만 도로와 주차장 설치 등 시설물 개선이 이뤄지고 있고, 마을박물관 구축 등 빈집 활용방안을 추진 중이니 차차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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