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검사→사후 검사
보완시공, 권고→의무화
“기술·경제·문화 등 종합 접근 필요”
[헤럴드경제=박일한 선임기자] 정부가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신축 아파트는 아예 준공승인을 받지 못하는 내용의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내놓았다. 층간소음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층간소음 해결을 국토부 4대 집중현안과제에 포함시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적극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주택건설업계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새로 내놓은 층간소음 기준이 자칫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자재값 인상 등으로 집을 짓기 어려운 상황인데, 또 다른 부담 하나가 더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정부는 실제 이번 대책을 통해 층간소음 기준에 미달할 경우 시공사의 보완시공을 ‘의무화’했다. 기존 제도에선 보완시공 혹은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수준이었다. 또 시공 중간단계에도 층간소음을 측정하도록 하고, 검사 가구수를 기존 2%에서 5%로 확대하는 등 절차적인 규제도 강화했다.
이런 제도 변화가 과연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해 줄까.
[게티이미지뱅크] |
▶층간소음 규제 ‘헛발질’ 역사?= 결론부터 말하면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층간소음을 좌우하는 건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의 층간소음 규제가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역대 정부가 내놓은 층간소음 대책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층간소음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00년대 이후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층간소음 대책을 준비하던 정부는 2005년 표준바닥구조 기준을 210mm이상으로 정해 발표했다. 세부적으로 콘크리트 슬래브 210mm이상, 완충재 20mm이상, 경량기포콘크리트 40mm이상, 마감몰탈 40mm이상 조건을 정해 이를 준수하면 아파트 사용승인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만약 건설사가 210mm 보다 얇게 시공하려면 ‘바닥구조 인정제도’를 적용받도록 했다. 아파트를 짓기 전 표준바닥 도면을 만들어 인정기관(LH,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표준 실험동 검사를 통과하도록 했다. 충격음 테스트를 거쳐 소음기준을 1~4등급으로 나눠 최소 4등급 이하(경량 충격음 58dB 이상, 중량충격음 50dB 이상)는 사용승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초고층이나 넓은 내부 공간이 필요한 건축물, 공사비 절감이 필요한 공공임대주택 등 표준바닥구조보다 얇게 짓고자 하는 경우는 이 제도를 활용했다.
물론 대형 건설사는 대부분 일반 아파트를 지을 때 210mm 표준바닥구조로 지었다. 두께기준만 맞추면 별다른 추가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향후 층간소음이 발생해도 건설사는 기준을 지켰기 때문에 면책이 됐다.
바닥구조 인정제도는 실제론 LH 등이 짓는 공동주택에 많이 적용됐다. 시공비를 아껴야 하는 만큼 표준바닥구조 보다 얇게 시공할(주로 180mm) 필요가 있었다. LH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은 2012년 이후에나 표준바닥구조를 도입했다.
정부는 층간소음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2013년엔 아예 슬래브 두께 210mm 기준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슬래브 두께 기준이 명확해 졌음에도 층간소음 문제가 점점 더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2010년대 이후는 폭증세를 보였다.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연간 접수건수는 2012년 8795건에서 2013년 1만8524건, 2014년 2만641건 등으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20년대엔 4만건대로 다시 두 배가 더 뛰었다. 2020년 4만2250건, 2021년 4만6596건 등이다.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원인으로 표준바닥구조 두께 기준만 있지, 세부 기준이 부실한 점이 지적됐다. 대표적인 게 20mm이상 넣어야 하는 완충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완충재로 대부분 단열재로 사용하는 스티로폼을 쓰는데 차음 기능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헤럴드DB |
소음 측정방식도 논란이 많았다. 소음 dB(데시벨) 기준은 만들어 놨지만, 정부가 어설픈 측정방식을 제시해 현장에서 형식적인 소음측정 행위만 이뤄졌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례로 정부는 중량충격음(주로 아이들이 뛰어 놀 때 나는 소음) 측정법으로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임팩트볼측정법’(배구공 크기 고무공을 1m 높이에서 떨어뜨려 소음 측정)을 도입했는데, 실제보다 측정 수치가 지나치게 낮게 나와, 건설업계에 허가를 내주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측정방식은 2015년 10월 폐지됐다.
그 이후에도 층간소음을 둘러싼 바닥 두께기준, 소음기준, 측정 방법 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층간소음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심각해졌다.
정부는 2020년 들어 규제 방식을 건물을 짓기 전에 시행하는 ‘사전 방식’에서 건물을 지은 후 하는 ‘사후 방식’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2021년 실태조사를 거쳐 2022년 8월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도입됐다. 바닥 마감공사를 끝낸 후 소음기준을 검사해 기준에 벗어나면 즉시 보완공사를 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도 실효성 논란이 생겼다. 기준 미달이 드러나도 보완조치나 손해배상이 그저 ‘권고사항’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보완시공을 의무화하고, 손해배상 내용을 공개하며, 검사의 수를 확대하는 등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말로 층간소음 해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닥재 기준만으로 층간소음 잡을 수 있나?=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바닥을 두껍게 하거나 새로운 소재의 완충제를 쓰고, 신기술이 적용된 바닥구조를 적용하는 것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창호 성능’이 층간소음 문제를 키운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외부 소음이 줄면 인간의 청력은 내부에 집중하게 된다. 2000년대 이전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층간소음이 덜한 것처럼 여긴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외부의 소리와 내부의 소리가 섞였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고층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젠 외부의 소리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내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층간소음은 꼭 천장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밀도가 높은 아파트는 건축 방식에 따라 단순히 윗집 뿐 아니라 윗집의 옆집, 윗집의 윗집의 소리까지 콘크리트 벽체를 통해 전달된다. 인터폰이나 전기 배선을 위한 배관을 타고 소음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뒷집 바닥을 쿵쿵 걷는 소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건설 자재의 발달도 층간소음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아파트 건설 재료는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해 더 얇은 두께로 벽과 층계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건설 자재의 발달로 초고층 건축이 가능해졌다. 보다 싸게 높은 건물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는 환경에서 경제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에서 고층 빌딩을 짓게 되면 각 층의 두께는 더 강하고 얇아야 한다. 이는 반대로 소리는 그만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별도의 차음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차음기술까지 적용하면 비용이 더 커진다.
종합하면 층간소음은 바닥두께, 바닥의 완충재 뿐 아니라 아파트 고층화 정도, 구조 설계, 창호 성능, 경제적 판단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입주민의 민감도에 따라서도 층간소음 기준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은 생활 소음이, 누군가에겐 엄청난 고통을 주는 층간소음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웃과 가깝게 지낸다면 소음이 아니라 자연스런 생활음처렴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층간소음 관련 사회·문화적 교육 등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다. 해결책이 훨씬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한 대형 주택건설업체 관계자는 “층간소음 문제는 바닥구조체는 물론 건물 구조 설계, 재료 등 온갖 건축 기술, 효율성이라는 경제 문제, 사람들의 심리 문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해 일어 난다”면서 “정부의 층간소음 대책이 보다 종합적인 방식으로 장기 계획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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