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4000건대 돌파하며 증가세 보여
강남구·용산구·서초구·송파구 순으로 많아
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매물. [연합] |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새 세입자가 ‘전세권 설정 등기’를 요구하는데 해도 될까요? 강남은 전세보증금이 비싸서 다 하는 거라고 하던데…”
# 최근 서울 강남구 아파트에 새 세입자를 들인 집주인 A씨는 ‘전세권 등기 설정’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A씨는 “세입자가 확정일자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며 전세권 설정을 원하는데 준비해야하는 서류가 많고 절차가 복잡해 고민된다”며 “서울 외곽 빌라도 아니고 전세가율이 50% 미만인 아파트까지 전세권 설정을 해줘야하냐”며 고민을 토로했다.
지난해 불거진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자 임차인이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까지 동원하고 있다. 확정일자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고 여겨 임대인에게 전세권 설정 등기를 요구하는 세입자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전셋값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6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권 등기 설정 건수는 4574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4358)대비 4.9% 증가한 수치다. 두 달 전(3888건)과 비교하면 증가폭은 17.6%로 더 크다. 지난해 3월 4000건대에 머무르던 전세권 설정 건수는 3000건대로 떨어져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올 들어 4000건대를 돌파하며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전세권 설정 건수도 오름세다. 지난달 744건을 기록해 전월 동기(679건) 대비 9.6%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강남구가 106건으로 집계돼 1위에 올랐다. 114건을 기록한 2022년 4월 이후 최대치다. 이어 용산구(70건), 서초구(67건), 송파구(59건), 중구(59건), 마포구(46건) 등이 뒤를 이었다. 고가의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권 설정 등기가 활발했다.
전세권 설정 등기는 세입자가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전세보증금을 지급하고 집주인의 집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후순위 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보증금의 우선 변제를 받는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세입자가 별도 소송절차 없이 집을 임의경매로 넘길 수 있다. 반면 확정일자는 전세금을 받기 위해 반환 소송과정을 별도로 거쳐 승소해야 한다.
전세권 설정 등기는 강력한 세입자 보호책으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전세권 설정 등기가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는 복잡한 절차와 만만치 않은 비용 탓이다. 확정일자 등록은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 없지만 전세권 설정은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만 한다. 집주인이 인감증명을 갖고 동복지센터를 방문해야하는 등 절차가 번거로워 세입자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비용도 작지 않다.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려면 신청 수수료 1만5000원에 ‘전세금 ×0.24%(등록세·지방교육세)’와 법무사 비용까지 내야 한다. 가령 전세보증금이 10억원일 경우 241만5000원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전셋값이 높은 일부 지역은 전세권 설정 비용이 크지만 이러한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안전장치를 이중으로 마련하겠다는 세입자의 의지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최근 전세사기와 역전세 등으로 보증금 반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세입자들이 처음부터 안전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세권 등기를 설정해놓으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 와도 별도 소송 절차 없이 집을 바로 임의경매로 넘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dodo@heraldcorp.com